코스닥 '컷스닥'

파이낸셜뉴스       2025.09.21 19:25   수정 : 2025.09.21 19:25기사원문



"코스닥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 지난 10일 국가 신성장산업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과제로 코스닥 정상화를 꺼내 들었다. 대통령이 공석에서 직접 코스닥을 콕 집어 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소·벤처기업 투자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는 대표적인 모험자본 시장이 코스닥인데 지난 30년간 사건·사고와 불공정거래 등으로 불신감이 깊게 박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 K증시가 미증유의 3400선 입성으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반면, 코스닥은 오를 땐 덜 오르고 빠질 땐 더 빠지는 약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코스닥지수는 2000년 3월 2834.40(현재 지수 환산 기준)까지 치솟았지만, IT 버블 붕괴 이후 옛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2021년 8월 1062.03으로 본격적인 천스닥 회복에 나서는 듯했으나 2023년 950, 2024년 920, 올해 860선 등 연중 고점이 줄곧 낮아지며(cut), 장기투자자들에게 생채기(cut)를 남기고 있다. 코스닥의 간판을 '컷스닥'으로 바꿔 달아야 할 판이다. 일부 대형주 위주의 투자 쏠림, 개인투자자의 높은 비중 등 다양한 이유가 꼽히지만 무엇보다 경제 규모에 비해 상장사가 과다하고, 이 중 상당수는 만성 적자인 데다가 퇴출은 더뎌 투자 매력을 반감시킨다. 코스닥 상장사는 지난 2007년 1000개를 넘어선 후 매년 40개 이상 순증해 현재 1800개사이다. 코스피 849개사의 두배를 넘는다. 그럼에도 코스닥 전체 시총은 454조원으로 코스피 2834조원의 16%에 불과하다. 수급을 주도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코스닥 거래량 비중 역시 지난해 13.0%로 코스피 27.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벤치마킹 대상인 미국 나스닥과 비교해도 코스닥은 숫자만 늘어나 가치가 떨어지는 상장사 인플레이션이 확연하다. 나스닥 상장사는 3600여개사로 시총 37조9800억달러(약 5경2400조원)에 달한다. 나스닥 상장사는 코스닥의 두배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시총의 경우 무려 117배 규모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지난 2024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미국 29조1700억달러로 한국 1조8700억달러의 15배다. 경제규모는 한국이 미국의 15분의 1에 불과한데 코스닥 상장사는 나스닥의 2분의 1 수준까지 불어났다.

기초체력도 부실하다. 올해 초 한국경제인협회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을 집계한 기준에 따르면 코스닥은 전체 상장사의 23.7%가 해당돼 약 4곳 중 1곳이다. 이달부터 3단계를 2단계로 줄인 신속퇴출제도가 시행되지만 대다수 관련기업이 상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정다툼으로 장기전을 펼쳐 실효성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정보를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공시도 코스닥에선 반신반의하는 기류가 짙다. 실제 한국거래소가 조사한 지난해 코스닥 불성실공시 건수는 113건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코스닥 상장사도 49곳에 달한다. 현 추세라면 지난해 95곳에서 줄어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행하지 않거나 번복하는 등 '아님말고'식 공시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에게 전가되고,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 훼손으로 이어지는 게 문제다. 코스닥 상장사들의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마냥 정당한 이유가 될 순 없다. 시장자금을 끌어들인 상장사는 투자자 보호의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장잠재력을 갖춘 기업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분석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외면받는 이유다.
'코스피는 실적, 코스닥은 꿈으로 먹고산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꿈은 신기루의 허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상에 가까워야 빛을 발한다. 이를 판별하고, 부실기업은 솎아내기로 조속히 퇴출시키는 시스템이 원활해야 시장 정상화도 앞당겨진다.

winwi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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