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거대 플랫폼의 시대… 기술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파이낸셜뉴스       2025.09.21 19:17   수정 : 2025.09.21 20:38기사원문
AI 필두로 하는 '네트워크 플랫폼'
전세계가 '단일한 보편성’ 사회로 진입
인간의 디지털 기술 의존도 키우고
군사적 충동에 신속한 공격 가능하게 해
각국 디지털 경쟁력 강화 중요하지만
활용체계·윤리기준 확보도 절실해져
이재명정부 AI 정책, 투자·지원에 집중
광장의 요구인 민주주의·인권 반영해야

이제 세계는 단일한 보편성의 경로에 들어섰다. 불균등하고 이질적이며 정의조차 힘든 것에서 균질하고 투명한 사회가 속속 전개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추동하는 것은 AI 기반을 필두로 하는 '네트워크 플랫폼'이라는 거대 사회운영체제가 전격적으로 가동되고 있어서다.

인간의 정신을 단일한 기술적 흐름에 정박시킨 것은 기술적 진화다. 이에 부합해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 구조의 막강한 위력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요인이다.

주요 플랫폼들은 세계를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전방위적으로 펼칠 주요 무대로 삼는다.

정보통신의 급격한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AI와 플랫폼의 결합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세계 지도를 뒤바꾸고 있다.

기술적 발전의 정점인 '특이점'의 시대가 드디어 왔다는 평가와 함께 플랫폼의 시대는 자유를 포박해 우리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침범하는 정복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 사회는 점점 '양의 네트워크 효과'가 증폭되는 분기점에 서 있다.



주요 네트워크 플랫폼이 사회 경제 정치 지형학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다. 양의 네트워크 효과는 네트워크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정보 교환 행위의 가치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여기서 성공한 네트워크는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며 결국 우위를 차지한다. 사람은 대개 형성된 집단에 끼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많을수록 이용자가 더 늘어난다. 네트워크 플랫폼은 국경의 제약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여러 나라에 걸쳐 이같은 양의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고 궁극적으로 경쟁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독과점 체제가 형성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상품의 경우 이용자가 많아지면 오히려 가치가 하락하는 경우와 대조적이다. 상품의 희소성이나 지연이 중시되고 배타성의 상실이 곧 매력의 상실로 통했다. 다시 말해 명품이 대중화하면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지정학적 구도가 바뀐다…기술과 정치의 결합

네트워크 플랫폼은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범위를 확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용자들은 이제 '비인간적 지능의 전 세계적 운용'이라는 '전인미답'의 현상에 직면해 있다. 그 속도와 폭이 어떨지는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특히 AI 기반 네트워크 플랫폼은 정보를 자동적으로 선별해주는 기능을 무기로 삼아 삶에 깊숙히 침투하면서 인간의 디지털 기술 의존도를 키우고 있다. 개인이 네트워크 플랫폼과 그 안의 다른 이용자들과 형성하는 관계는 원거리 연결에서 친밀감을 느끼는 특이한 관계다. AI가 마치 개인 맞춤형 경험의 안내인이거나 조력자가 된다. 이런 관계와 경험이 쌓일수록 AI와 이용자간의 관계는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다. 단순히 정보를 구하거나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상호작용을 통한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

네트워크 플랫폼은 이제 지정학적 전략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국 미국 일부 유럽 국가는 타국 즉 잠재적 경쟁국에서 개발된 AI로 운용되는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내국인의 경제 활동과 사회활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계하고 있다. 기술과 정치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이런 현상 속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단연 선두주자는 미국이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신기술 열풍에서 미국은 이미 다수의 글로벌 기업을 만들었고 이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위력을 뽐낸다. 이 기저에는 세계 최고 인재들의 확보, 혁신기술의 확산과 이를 수익화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정부지원 등의 요인이 작용한다. 미국 주도로 확립된 기술표준과 개인 및 기업고객이 대거 포진한 내수시장도 이런 효과를 증폭시키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미국은 네트워크 플랫폼을 대외전략의 한 축으로 삼으면서 일부 외국계 플랫폼의 미국 내 영업을 제한하고 다른 외국계 플랫폼이 발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나 기술의 반출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규제를 무기로 네트워크 플랫폼간 경쟁을 부추기고 국제기술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싸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중국 플랫폼들은 중국과 인근 국가를 장악했고 일부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중국은 내수시장에 이어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기술적 특수성, 중앙집권적 관리, 효과의 규모 등 이 세 가지 요소는 전통적으로 군사와 민간의 영역을 구별하면서 작동했다. 기술의 확산 속도와 잠재적 파괴력 등이 이 세 요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AI는 이런 패러다임을 깨뜨렸다. AI는 막강한 잠재적 파괴력으로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유례없이 신속한 공격을 가능케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제 대응의 충동이 강하게 일어 이전에 취해진 현명하고 신중한 대처라는 공식은 파괴된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공격은 분쟁의 격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 AI 기반 전략을 기존에 정의된 전략과 국제평형의 개념에 결합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술적 우위를 정부가 독점할 수 없어서다. 사회 주체 모두가 전략적 영향력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회적으로 전략적 기술적 합의를 이뤄내기 힘들어진다. 합의의 시대에서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이 초래하는 비합리의 시대로 접어들 태세다.

■AI 시대의 딜레마

앞으로 사회는 AI 기술을 다양한 주체가 습득하고 개발하고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처해 있다. AI 기반 공격은 다양한 경로로 전개되고 이에 대한 AI의 대응은 가공할 속도로 펼쳐진다.

네트워크 플랫폼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종전 한 국가 내에서만 통용되던 정보 습득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국제화되고 궁극적으로 한 국가의 혈관이 되는 것이 지배적인 현상으로 굳어져 갔다. 타국의 경제에 필수적 인프라가 된 네트워크 플랫폼은 본국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해당 국가는 이런 플랫폼을 금지할 수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수많은 수요자들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 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불가피하다. 국가뿐 아니라 지역간에도 AI 기반 네트워크를 둘러싼 각축전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서로 밀고 당기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전략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상호간 갈등과 부작용을 차치하더라도 세계는 이제 단일한 보편성에 이르는 경로를 확정했다. 일상의 현실이 전 세계적 규모로 펼쳐진다. AI 기반 네트워크 플랫폼이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의 정신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이같은 세계 격변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대선 당시 디지털 산업을 둘러싼 공약들이 연일 쏟아졌다. 가상자산, 인공지능(AI), 데이터 기반 경제 등 주요 의제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디지털은 이제 단순한 산업 분야를 넘어 경제 전반의 구조를 바꾸는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로 가상자산 투자자 수는 1800만명에 이르며, AI 기술은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변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 공약이 그 흐름을 담아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관련 업계의 반응은 미온적인 것이 현실이다.

가상자산 관련 공약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정치권에서 제시됐지만 번번이 좌초된 것이 대표적이다. 주요 정당이 각각 토큰증권, 현물 ETF, 통합감시 시스템 등을 약속했지만, 현실에서는 제도와 부처간 조율에 막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같은 공약이 몇 년째 반복되지만, 제도나 규제 정비는 제자리걸음이다. 반면, 미국은 비트코인 현물 ETF를 공식 승인했고, 일본도 관련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각국간 디지털 정책의 온도차가 극심하다.

■디지털 정책은 제자리…도달 경로 확보해야

AI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지를 밝히고 대규모 투자를 언급하고 있으나, 정작 실행 주체나 정책 추진 구조에 대한 언급은 부족한 상황이다. 전력 인프라, 데이터 활용 체계, 윤리 기준과 같은 세부 의제들이 일부 논의됐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산업계에서는 "방향은 맞지만, 도달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제가 반복될수록 산업계의 신뢰는 약화된다. 디지털 산업은 더 이상 미래의 과제가 아니다. 정부는 마땅히 실현 가능한 전략과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은 투자와 지원에만 집중돼 있고 AI로 인한 위험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 정부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AI의 민주적 통제와 영향을 받는 시민의 권리 보장, 공공성 강조, AI로 인한 자원과 에너지 및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에서 추진해야 할 주요 디지털·AI 정책 과제로 △AI 안전과 실업 문제에 대한 국가적 대응 체계 구축 △알고리즘 편향과 디지털 차별 방지 △빅테크의 데이터 및 자원 남용 방지를 제시하고 있지만 현 정부에서 이를 얼마나 수용하고 적절한 규제와 정책을 수립할지는 불투명하다.


정작 광장의 요구인 민주주의, 평등, 인권회복을 AI 정책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강하게 비판했다. 전 세계적 AI 경쟁의 압박 속에서 규제 완화라는 바닥을 향한 경쟁에 매몰되는 것은 시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해야 할 정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AI가 초래할 다양한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적절한 규제 방안을 제안하고 이에 합당한 정책 마련에 나설 때라는 요구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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