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의 자격과 역할

파이낸셜뉴스       2025.09.01 18:50   수정 : 2025.09.01 18:50기사원문
영부인의 조건은 품위와 절제
프란체스카 청빈 생활은 귀감
16개 혐의 김여사는 국격 먹칠
영부인 활동도 보장해야 하나
미국 등은 동선부터 투명 공개
우리도 제도 보완책 마련해야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삶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미 흘러간 인물이고, 서양인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여사는 경무대에서도 양말을 기워 신고 우편물 귀퉁이를 찢어 메모지로 썼다.

산책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이승만보다 서너걸음 뒤떨어져서 걸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값비싼 명품과 의상을 좋아하고 대통령보다 앞서 걸어가기도 하는 근래의 대통령 영부인들과는 달랐다.

영부인은 외모와 언행에서 남다른 품위와 절제가 요구된다. 여염집 아낙네가 아니라 국민이 지켜보고 외국에서도 관심을 갖는 퍼스트레이디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렁치렁 몸을 감싼다고 백성들이 우러러보지 않는다. 인자하고 겸손한 내면을 지니고 패션과 외모는 수수하면서 단정해야 존경을 받는다.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16가지 범법 혐의를 받는 김건희 여사는 귀감이 되어야 할 영부인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내적·외적 품위는 고사하고 불법과 비리로 국격에 먹칠을 했다. 취임 전 구설을 감쌌던 지지자들조차 일말의 동정심마저 버리고 등을 돌렸다. 정치적 탄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자면 무혐의를 입증하고 재판에서 이겨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기 위해 영부인도 활동을 할 수 있다. 다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복지 분야 등 제한적 범위에서 가능하다. 프랑스에서는 영부인의 역할과 관련, '투명성 헌장'을 발표했다. 엘리제궁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브리지트 마크롱의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고 있다. 활동은 주로 장애인, 어린이, 교육에 관한 것이다. 미국은 영부인에게 조직과 예산 등 대통령에 버금가는 지원을 할 수 있다. 어느 나라보다 영부인의 활동이 왕성하지만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운영하여 잡음이 없다.

우리는 영부인 지위나 관리에 관한 규정이 경호 외에는 없다. 그나마 있던 제2부속실도 윤석열 정부에서 '조용한 내조'를 내세우며 없앴다. 결과는 조용하지 않았고 더 시끄러워졌다. 조용히 지낼 의사가 없었음은 드러나는 비선 조직에서 확인된다. 부속실을 없앤 것이 비밀스럽게 음험한 행위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느냐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영부인은 군주국의 왕비와 같다. 왕비는 교육을 받아야 하고 품행이 바르지 않으면 자격이 박탈된다. 영국 조지 6세의 부인이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오늘날 영국 왕실을 있게 한 인물로 평가된다. 언어장애가 있는 남편을 조용히 도왔고, 2차대전 때의 공습에도 끝까지 버킹엄 궁전을 지켜 국민에게 용기를 줬다.

조선 왕비는 어땠을까. 매우 까다로운 삼간택, 즉 세차례 면접을 거쳐 선발된 세자빈은 6개월이 넘는 동안 왕실의 법도와 덕목을 교육받았다. 품위와 예절, 교양뿐만 아니라 걸음걸이도 배웠다. 후궁에서 왕비가 된 장희빈이나 국정에 적극 개입한 명성황후 민비 정도를 제외하고는 왕비들은 대체로 왕을 내조하고 궁궐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에 충실했다.

권력의 중심에 들어서면 영부인도 본분을 망각하는 모양이다. 유례가 없는 대통령 부부의 옥살이는 대통령으로서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 수신제가(修身齊家) 실패도 원인이다. 김 여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비위를 알면서도 눈감아 줬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는 무더운 감방에서 뼈저리게 느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에게는 강한 리더십을 요구하면서도 영부인에게서는 따뜻하고 친근한 모습을 원한다. 권력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알아도 모른 척하고, 사회의 음지를 남몰래 찾는 마음씨에 호감을 느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기품을 다시 떠올린다. 한복을 입은 단아한 용모와 불우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국민들은 아직도 기억한다. 광부와 나환자, 버스 안내양, 수감자를 찾은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전 국민을 위로하는 일이었다. 육영수의 청와대 살림원칙은 '항상 중류 살림을 하자'는 것이었다. 필요도 없이 켜진 전깃불을 껐던 절약정신은 프란체스카와 닮았다. 최근 영부인들의 탐욕적 생활과는 대조적이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부패에서 영부인도 예외는 아니다.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가 체육관에 에어컨 수십대를 켜놓고 열대의 나라에서 모피코트를 입을 때 백성들은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우리에게 이런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tonio66@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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