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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美 전문직 비자 수수료 폭탄, 韓 인재 유치 기회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1 19:25

수정 2025.09.21 19:25

세계 인재용광로 비자규제로 흔들
파격 대우로 기술두뇌 끌어들어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비자 제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비자 제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이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연간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대폭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포함한 미국의 대대적인 H-1B 비자 프로그램 개선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지난 19일 전격 서명했다. 세계 각지의 기술두뇌들을 빨아들이는 용도였던 H-1B 비자가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철퇴를 맞은 현실은 여러 가지로 씁쓸하다. 앞으로 미국 비자는 더 깐깐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로선 현지 한국 기업의 한국 인력 수혈을 위해 필요한 조치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더불어 지금을 고급 인력의 국내 유치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H-1B 비자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전문직종을 위한 비자다. 추첨을 통해 연간 발급건수를 8만5000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기본 3년 체류가 허용되고 연장도 가능하다. 테슬라, 구글, 메타 등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H-1B 비자로 매년 수천명 규모의 해외 핵심 기술인력을 영입했다. 인재유치 경쟁이 불붙은 실리콘밸리에선 발급건수를 더 늘려 달라는 요구를 했으나 트럼프 정부는 오히려 기존보다 100배 많은 수수료로 이를 거부한 것이다.

미국의 비자 수수료 폭탄은 의도가 명확하다. 기존 H-1B 프로그램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인식이 포고문 곳곳에서 드러난다. 포고문 서명식을 지켜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외국인 노동자를 교육해온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미국인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값비싼 비자 수수료는 조지아주 한국 공장의 구금 사태와 사실상 맥락이 같다.

미국이 AI 선두가 된 것은 세계의 과학두뇌들이 너도나도 실리콘밸리로 몰려들면서 얻어진 결과다. 실리콘밸리는 세계 인재의 용광로 역할을 하면서 테크와 AI의 글로벌 첨단기지가 됐다. 그런데도 트럼프 정부는 강성 지지층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만 보고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파장이 커지자 국익에 부합 시 예외를 허용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듯한 발언이 백악관에서 흘러나왔으나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 출신의 H-1B 비자 비율은 1%선이라고 한다. 최근 10년간 H-1B 비자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2만여명이다. 매년 2000여명이 이 비자로 미국에 갔다는 뜻이다. 고급 기술인재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우리 정부로선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정부는 전략기술 분야 해외 인력의 국내 정착 프로그램도 추진 중이다. 최근엔 이와 관련된 민관합동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했다. 파격적인 제안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인재 순유입 틀을 만들어야 한다. 영입된 인재와 세계 석학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일도 시급하다. 성과에 따라 보상을 해주는 임금제가 전 부문에서 확산돼야 한다.
미국 현지 한국 공장에 수급이 절실한 한국인 숙련공의 비자문제는 별도로 정부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구금 사태 후 현지에선 미국인 공개채용을 서두르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정부와 민간의 공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