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대세 스포츠인 마라톤은 초반 페이스가 기록을 가른다. 오버페이스를 피하고 보폭을 유지해야 막판에 힘이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유엔 순방도 그 원칙이 필요하다. 뉴욕에서 리듬을 만들고, 경주(APEC)에서 결과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지난 19일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의 브리핑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뉴욕에서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문장이다. 첫째, AI의 군사적 전용과 고위험 사용을 막을 '가드레일 문장'이다. 위험 영역을 적시하고 '투명성·인간 통제'를 원칙으로 못 박아야 한다. 둘째, 해외 현장 리스크로 흔들린 신뢰를 복구할 '약관 문장'이다. 대미 투자인력 보호, 공급망 안정, 정책 일관성을 정부가 어떻게 책임질지 투자자가 즉시 읽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문장이 나와야 스타트라인에서부터 리듬을 탈 수 있다.
위 실장이 강조한 분리 운용은 현실적이다. 통상은 수치와 표로 움직이는 실무라인에서, 안보·외교는 정상라인에서 신뢰와 방향을 관리한다. 서로 얽히면 둘 다 흔들린다. 대북 메시지 어휘도 정비했다. '동결' 대신 '중단'을 첫 단추로 검증과 상응 조치를 단계화한다. 거창한 구호보다 작동하는 절차를 남기는 선택이다. 언덕 구간에서 보폭을 줄여 페이스를 지키는 전략과 같다. 결승선은 내달 경주 APEC이다. 뉴욕에서 제시한 룰이 경주에서 조항, 숫자로 고정될 때 힘을 갖는다. 관세는 원칙 합의와 세부 조율의 단계표, 공급망은 공동 행동지침과 예외 규정, 투자 유치는 세제·인허가 타임라인, 북핵은 '중단 확인-검증 일정-상응 조치'로 문서화해야 한다. 사진보다 공동성명이, 성명보다 이행 일정표의 효과가 크다.
이번 순방의 관건은 단순하다. 미중 양자택일의 함정에서 벗어나 '룰을 제안하고 실리를 챙기는 주체'로 서느냐다. 방법도 복잡하지 않다. 이해당사자가 곧바로 적용할 짧은 문장, 그리고 그 문장을 일정·예산·책임으로 붙드는 운영력이다. 뉴욕에서 페이스를 만들고 경주에서 테이프를 끊는 그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버페이스가 아니라 피니시라인을 전제로 한 고른 보폭이다.
west@fnnews.com 성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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