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이재명 대통령은 밀착형 현장 행보를 많이 한다. 지역 곳곳에서 민생·안전 중심의 현장 간담회를 활발히 열고 있다. 사고나 재난·재해 현장 방문도 빈번하다. 최근엔 경기 시흥의 SPC 공장에서 중대산업재해 현장 간담회를 열고 근로자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문제를 다뤘다. 8시간 초과 야근 문제를 짚는 등 근로환경이나 처우와 관련해 구체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부산 타운홀미팅에서는 해양수산부 이전 등 지역 현안을 논의하며 시민 참여형 아이디어 공유 방식을 활용했다.
반응은 전반적으로 좋다. 성실성·민주성·주체성·책임성 등의 덕목을 기한 건 물론 이 대통령 특유의 순발력 있는 입담으로 현안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며 국민에게 친근감을 주었다. 회사 운영진이나 관련 공무원에게는 경종을 울리며 쇄신 분위기를 잡았다. 아직 임기 초 허니문 기간이라 긍정 반응이 클 수밖에 없겠지만, 이 대통령은 밑바닥부터 올라와 지자체장(시장·도지사)까지 지낸 정치인답게 현장에서 서민·노동자와 어울리는 데 비교우위를 보였다. 앞으로도 이쪽으로 우선순위를 둘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잘나갈수록 대통령과 보좌진은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자만심이 들어 정도를 넘기 쉽다. 대통령이 현장의 미시적(micro) 행정에 직접 나서는 게 과해지면 거시적(macro) 정치·국정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제도화된 기존 틀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시장이든 정부든 모든 시스템은 제도화된 틀에서 움직인다. 그래야만 원칙을 지키며 체계성·정합성을 기할 수 있다. 또한 예측가능성 높게, 즉 안정되고 질서 있게 움직일 수 있다. 형평성은 여기 자연히 따라온다. 반면 대통령의 현장 활동은 때론 즉흥적·자의적 간섭으로 흐르며 제도화를 위축시킬 수 있다. 물론 기존 질서를 쇄신해야 할 경우에 대통령의 현장에서의 한마디가 효력을 낼 수 있지만, 오랜 기간 구축된 제도화엔 그 나름의 이유가 다 있다.
둘째, 앞의 문제와 직결된 것인데 정치·국정 과정상 포퓰리즘이 심해질 수 있다. 포퓰리즘이란 정치인이 '엘리트층 대 기층 서민'의 피아(彼我) 구분을 한 후 제도 틀보다는 개인적 인기에 의존해 서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호응을 얻어 국정을 운영하는 정치 양태를 뜻한다. 지도자가 기저층 유권자와 밀착 연계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흑백논리를 퍼뜨리고 양극적 대립을 조장하며 지도자 1인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가운데 제도 틀이 약해진다는 점이 우려를 낳는다. 근래 미국, 유럽 등에서 퍼져 국정을 위기로 몰아넣는 이 문제가, 대통령의 현장 행정 과몰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확대된다면 곤란하다. 현장에서 유권자의 호응을 얻는 가운데 자칫 사측, 관료, 반대 정당에 대한 적대감이 조장되고 제도보다는 대통령 중심적 국정 방식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정치인의 현장 행보는 국민과 실무 관계자를 위로, 격려, 응원하는 데 유용하다. 정치인 본인은 물론 소속 정당, 정부, 국가에 대한 신뢰감을 키워준다. 그러나 정치인이 경청을 넘어 현장 감독관처럼 세세하게 지시하는 데 너무 치중하면 단발성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도화의 위축, 포퓰리즘 확산이라는 병폐가 깊어진다. 바카라의 미시적 행정 챙기기엔 선이 있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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